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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3회 반도 전시기획 공모전 대상 수상작 전시회Ⅰ
2023-08-19 ~ 2023-09-20

 

2023 반도 전시기획 공모전 '자유 주제' 부문 대상 수상 전시회 

 

* 전시 기간 : 2023년 8/25(금) ~ 9.19(화) 

 

*전시 연계 프로그램 :  < 김철환 작가와 함께하는 나만의 밈(Meme) 만들기 >

  *모집 대상: 김철환 작가가 편집한 페페의 스케치를 이용해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그려보고 그 속에 들어갈 좋은 문구를 써보고 스스로 해석해봄으로서 밈(Meme)의

존재 이유와 사고의 다양성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시간이 되고자 함

  *일시: 9월 7일 목요일 오후 4시-5시30분

*장소: 반도문화재단 아이비 라운지 갤러리

*내용: 1) “Will you 罵詈 me? 작품 감상 및 해설  2) 김철환 작가와 함께하는 나만의 밈(Meme) 만들기

*진행: 김철환 작가, 큐레이터 이한나

*신청대상: 전 연령대 (아동과 함께 신청시 보호자 반드시 참여 필수)

*참가인원: 10명 이내

- 구글 신청 (신청기간: 9/3,일요일까지)  >>> 본 프로그램은 참여 가족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신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제외되신분들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참가비 : 무료

 

전시 서문

이번 전시의 제목인 “윌 유 매리 미?”를 보면 “나와 결혼해줄래요?” 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매리”의 뜻은 한자로 ‘꾸짖으며 욕하다’이다. 직역해보자면 “나에게 욕설을 퍼부을 것인가요?” 가 된다. 결혼이 서로 너무 다른 남성과 여성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듯 이번 전시 주제인 욕설 또한 상반된 두 가지 성격: 역기능과 순기능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욕의 역기능을 시각화 했다. 욕설은 우리 사회 속 무시될 수 없는 심각한 언어 문제이고,  상대방을 모욕하고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격하게 표현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습득되는 것도 바로 욕이다. 그 이유는 다른 단어보다 4배나 더 강력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인데, ‘감정의 뇌’를 아주 강하게 자극시키는 동시에 ‘이성의 뇌’의 통제력을 잃게 한다. 또한 욕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뇌에 모두 상처를 입힌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상처의 크기가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인데. 도대체 왜 우리는 뇌에 심한 상처를 주면서까지 욕을 하는 것일까? 언어는 눈에 보이지 않고, 금방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되기에 내뱉은 욕의 힘과 크기를 미처 인지하지 못한다. 언어는 분명 아주 강한 힘(예: 말이 씨가 된다.)을 가지고 있음에도, 본인이 한 말을 시각적으로 되짚어 볼 때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하지만 욕은 나쁜 것이니 쓰지 말라고 하면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전시는 말의 힘과 나쁜 언어 습관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는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욕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 과연 욕은 어디서 배우는 것일까? 이 전시에서 기획자는 작가들에게 총 5개의 속담과 사자성어 중 하나를 선택해 작업 해보라는 미션을 주었다.

1)농가성진: 말이 씨가 된다.

2)돌아본 마을 뀌어 본 방귀: 놀러 다니던 사람일수록 잘 돌아다니며 방귀는 뀌어 보기 시작하면 안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무엇이나 하기 시작하면 재미가 붙어 그만둘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3)상즉불리(相卽不離):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다는 말로, 윗사람이 옳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이를 본받아 행실이 옳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4)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이다.

5)설망어검: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말로 남을 해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삶의 교훈이나 지혜를 담고 있는 속담과 사자성어를 모티브로 한 작업들을 통해 부정적인 언어습관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본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윌유매리미전' 작가 & 기획자 인터뷰 영상 바로 가기


기획자 이한나

김정인  acrylic, pencil and pen drawing on canvas, 45x45cm (2023)

김정인의 작품 [Liar, Liar]는 거짓말을 일삼는 존재의 이미지에 눈동자를 없애고 얼굴을 까맣게 칠했다. 거짓말의 목적인 자신을 돋보이려는 속내는 왕족의 의상과 왕관을 활용했다. 거짓이 말과 연결됨은 노랑 바탕에 낙서처럼 씌여진 단어들을 통해서도 재차 강조된다. 또 하나 주목될 점은 거짓을 감추기 위해 거짓들이 무한 재생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품 [S. Beach]는 거짓말과 상호감시의 관계를 말한다. 진실할 수 없는 조건은 감시를 넘어서 스스로 검열하는 단계다. 참새떼처럼 똑같이 보이는 개체들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에 대한 환상 또한 깨뜨린다. 김정인의 작품에서 감시당하는 개체들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본다. 대중개인주의는 같은 것을 욕망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김철환 <Boom 뚱이> 캔버스에 아크릴, 플라스틱, 92 x 73cm (2023)

캐릭터를 차용한 김철환의 작품은 배경에 ‘BOOM!’이라는 단어를 가득 채웠다. 작가에 의하면 이 단어는 ‘폭약의 반응처럼 순식간에 일어나는 인지과정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코드화되어 인터넷으로 수렴되는 소통상황에서 정보소비자들은 정보의 범람 속에서 놀라운 것에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팝콘 브레인’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지경이다. 뇌가 최소화되고 배불뚝인 당근 모양의 캐릭터는 사고의 축소화와 소화불량의 상태를 말한다. 김철환이 그림 속 도상 일부를 흐릿하게 처리한 것은 자극적인 정보들이 확실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팝콘처럼 부풀려지고 무의식중에 소비하게끔 코드화된 정보이자 상품들은 비만처럼 인간을 좀먹을 것이다. 

최민경 뱀과 사다리> 디지털 프린팅, 200 x 270cm (2023)

최민경의 작품 [뱀과 사다리]는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옮겨 아래 칸으로 내려앉거나 위로 올라가서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면 이기는 오래된 게임을 차용한다. 디지털 프린트로 된 작품은 관객이 참여할 수 있고 가져갈 수도 있다. 추락을 상징하는 뱀은 어둡거나 화난 얼굴로 귀결되고, 그 반대는 스마일이다. 장난감이 변변치 않았던 50여년 전에도 있던 놀이판이 반가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과 벌의 기준이 모호하다. 인류학적 입장에서 놀이를 연구했던 로제 카유와의 분류에 의하면 우연 놀이(알레아)인 셈인데, 주어진 목표에만 매진하는 이에게 우연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현대의 시스템이 점점 더 공고해지면서 우연이 아니면 변화의 기회가 없다. 물론 변화에 대한 가치판단도 각자 다르겠지만 말이다. 

민주 <땅따먹기_팔현> 혼합재료, 가변크기(2023)

민주의 작품은 기억 속의 집이 사라진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버려진 것들에 대해 집착하게 된 사적 경험과 관련된다. 재개발 공화국에서 이러한 경험이 개인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작품에 보편성을 부여한다. 작가는 대구의 대표 습지들이 골프, 캠핑, 자전거 보도교를 위해 파괴되는 현장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했다. 작품 [땅따먹기; 23 팔현]은 야생의 자연을 ‘문명화’하려는 진보에 대한 거부일까. 작가는 장기적인 비전이 결여된 발전주의가 결국 ‘문명’에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걸쭉한 밀양 아리랑 노래가사에 실어 전달한다. 민주가 재구성한 자연과 문명의 풍경은 부드러운 다양성과 날 선 획일성의 대조를 말한다. 

 

고의선  <그냥 나의 위로에요> 크래프트 종이봉투, 차 티백, 디지털 프린트, 각 17x11.5cm (2023)

고의선의 [그냥 나의 위로에요]는 이 전시의 주제와 관련되어 관객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런 종이봉투 안에 차 티백과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의 디지털 프린트가 들어있다. 이 선물을 가져가는 관객은 달콤한 향이 나는 차를 마시면서 그림과 소설에서 차용된 삶의 위로가 될 만한 문구를 음미할 수 있다. 작가는 지금은 전자메일에 의해 사라지다시피한 편지의 형식을 택하면서 상대방에게도 준비된 소통을 기대한다. 차 한잔을 포함한 간접적 소통은 대면이든 아니든 건성건성 하는 일반적 소통에 대한 대안이다. 봉투에 ‘please be nice to me’이라는 문구는 대중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예술작품이 다소간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괴감도 포함된다. 

이선영(미술평론가) 글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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